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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재잘재잘

나의 동물이야기

by eoieiie 2022. 12. 8.

저는 동물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수의사 해서 강아지 많이 만지는 게 꿈이었습니다.
의사 할 머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좀 많이 걸린 것 같긴 하지만


암튼 저는 동물을 되게 좋아합니다
지네 빼구요
걔들은 진짜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지네가 조금 불쌍한 것 같기도 해요
생긴 걸로 자신들을 판단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미울까
모쪼록 그런 지능이 지네에게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쨌든 제가 키워봤던 동물들의 이야기를 좀 해볼건데
거미 키우는 사진 뭐 이런 것까지 보고 싶진 않으실 것 같아서
몇 가지만 뽑아서 적어보려 해요

.
.
.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동물은 강아지였습니다
이모가 기르시던 아주 귀엽고 똑똑한 말티즈였는데
지보다 한참 먼저 생을 살아오신 노견을
겨우 두 살짜리 꼬맹이가 정말 많이 귀찮게 하곤 했었지만
한 번도 이빨을 드러낸 적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이모 사실 치치 간식 옆집 누렁이한테 준거 저에요 읍읍

딥빡


그다음에는 유딩이던 제가 이란에서 살 때
여름에 마당에 돌돌 말아놓은 카펫 안에다가
고양이가 새끼를 깐 적이 있었는데

 

 



눈도 채 못 뜬 새끼 고양이들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어린 마음에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막 물고 빨고 만지고 했었는데
그럼 안되는걸 누가 알았겠습니까
집에 죄다 데려와서 사진 찍고 돌려놨던 바로 다음 날
어미 고양이가 오죽 불안했으면
금세 하얀 털조각들만 남겨두고 이사를 갔더랍니다

... 그럴만했네





구구단 못 외우겠다고 질질 짜던 초 1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새 한 마리를 봤습니다.
가까이 가도 안 도망가길래
본인을 비둘기로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만져도 가만히 있어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날갯짓도 하고 짹짹거리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기운 없이 비실대길래
이름은 비실이로 지었습니다.
(나름대로 되게 고민하고 지었다는데...)

 

먹겠냐고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바로 다음날 싸늘하게 식어있던 조그만 새를
아빠랑 같이 묻어주러 가던 그 길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죽음이란 것을 경험했던 첫날이었기에
살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날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그런 거죠
가만히 내버려 두면 각자 갈길 갈 존재들이
어떠한 이유로 만나 서로를 지나치지 않고
추억을 쌓으며 정이 들어버리면
하지 않아도 될 감정 소모란 것을 하기 마련입니다.

근데 또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게 있듯이
감정도 소모하면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 둥둥 떠돌다가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그것이 나쁜 감정이던 그리움이던 사랑이던

그때의 어리던 눈물들이
지금 이렇게
희미한 동심을 다시 피워줄 추억으로 자라서 돌아온 것처럼요.
여러분도 무심코 흘려보냈을 소중한 감정들을
언젠가 예쁜 추억으로 돌려받으시길 바랍니다.

쨌든
한때는
고양이들 짝짓기 철이 언제인지 공부해서
그때에 맞춰서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보금자리가 어디 있나 찾기도 했었고
길에서 움직이는 거 찾으면 무조건 집으로 데려왔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떼쓰는 게 일상이었었습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던 건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풀숲에서 발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고양이가 너무 키우고 싶었거든요
너무 신나서 어미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집으로 데려왔었는데
엄마는 당연히 허락을 안 해주셨고
울어대는 고양이랑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어쩔 수 없이 밖에 다시 데려다 놓아야 했습니다.

그 작은 아이를 죽을 거 알면서도 혼자 내려놓아야 했기에 너무 미안했었어요
근데 정말 다행히도
제가 고양이를 발견했던 곳에다가 내려놓자마자
어미가 바로 나타나서 조심스레 물고 데려가더라고요.
어미는 또 얼마나 불안했었을까요

멀쩡한 가족 생이별시켜서
소중한 생명 하나 죽일 수도 있던 저였기에
다음부터는 동물은 절대 함부로 데려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길에서 보는 고양이 예쁘다고 함부로 막 데려오시면 안 돼요

그래서 저는 고양이 말고 다른 동물은
예를 들자면 병아리 같은 거는
허락을 해 주시지 않을까 하고
어디서 병아리 부화기 만드는 방법을 읽고선
직접 계란을 부화시켜보겠다고
학구열을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진이 이거밖에 없네요




계란의 크기와 색, 무게
어미닭의 체온에 가까운 온도, 습도, 적당한 빛과
시간에 맞춰서 하루에 4번 계란을 뒤집는 것 등등
대학원생이었다면 논문을 써서 올려볼 정도로 부화기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거의 6개월 동안 그것만 만들고 연구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부화기를 만들었고
21일 24시간 동안 따뜻한 백열등을 켜 놓아서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지만
엄마는 그런 제가 기특하셨는지
얼마든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 하셨습니다

사실 이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유가 아닐까요
계란을 품다가 실패한 나머지 따뜻한 전구를 발명해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
맞잖아요 에디슨

그런 에디슨의 정신을 이어받아
어미닭에 빙의하여 밤낮을 품어가며 노력했으나
15일째 되는 날
아쉽게도 계란들 속 생겼던 작은 심장과 혈관들은 까맣게 변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6일을 더 기다려봤으나
결국 병아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위에 보이죠?




좌절하던 제게
아빠가 시장에서 병아리 세 마리를 데려오셨습니다.
달걀들에게 우리 아빠처럼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은 뒤로 하고
제가 처음으로 엄마의 허락을 받아
키우게 된 꼬물대는 노란 병아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재잘대며 돌아다니는 조그만 털뭉치들은
귀엽습니다.


 

노른자를 병아리 먹이로 주는 잔인한 인간

 

더우면 저래 눕습니다

 

잘 키워서 양계장 차릴려고 그랬는데

아시는 것처럼 시장에서 파는 아이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렇게 또 짧은 만남을 거쳐 이별을 해야 했지만
이전보다는 조금은 덤덤하고 의연하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때가 중딩이었을 건데

아니다 사실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슬픈 눈물은 감정의 미련 같은 겁니다
감정이란 것이 담을 수 없이 커져버리면
어딘가로 넘치기 마련인데
굳이 눈앞을 흐릿하게 가리면서

화장도 한번 지워 보고
말문도 좀 막아주고
사람 완전 못생기게 만들고
혼자 난리란 난리는 다 치잖아요?
흘러서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라도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거죠.

그것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차피 슬픔이란 흘러 없어질
따뜻하고 또 조금은 짭짤한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다들 한 번쯤은 맛보아 기억하고 있기에

사실 우리는 모두
울고 있는 누군가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겁니다. 
가끔 슬픔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누군가를 위해서

자국이 남기 전에 눈물을 적당히 지워 줄
부드러운 손수건 같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으시길 바래요.

 

어쩌다 보니 감성팔이 글이 되어버린것 같긴 한데 

 

뭐 아무튼 제게 이렇게나 많은 추억을 남겨 준
언제나 고맙고 그리운 아이들 이야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
.
.

 

다음에는 

드디어 집사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끄적여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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